2. 사건의 내막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미해군의 정보국은 유럽으로 가던 수송선들이
악명높은 독일의 U-Boat에게 계속하여 격침을 당하자 긴급하게 대비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비책을 세우던 미 해군은 아이슈타인이 발표한 물체의 투명성 원리를 이용해서
공간이동을 시도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고 미 해군은 이를 받아들여 테슬라박사가
발명한 상당한 파워의 전기장치인 테슬라 코일을 설치해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 지휘자인 니콜라 테슬라 박사는 물체의 투명화와 불가시화
현상(Invisibility)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다 이 기술을 생명체에
적용하는 것에 반대한 끝에 프로젝트에서 축출되었고 그로부터 10개월 후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결국 레인보우 프로젝트는 1943년 10월 28일에 거행되고, 전해진
바에 의하면 USS Eldridge호를(좌측사진참조)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남쪽 멀리 떨어진 Norfolk 항구로 공간이동을 시킨 후 다시 필라델피아
항구로 공간이동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기쁜 마음으로 갑판위로 올라가게 된 과학자들과 해군 관계자들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갑판위에는 승무원들의 시체가 있었고 포탑주위에는 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채 죽어있는 승무원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실험을 위해 1500억 볼트의 전류가 발전기를 통해 유입됐다고 하는데,
그 양이 상당해실험후에도 위험 방사능 수치를 보여 갑판위에 올라간 해군
관계자들을 급히 대피시켰을 정도라고 한다.
실험당시 USS Eldridge호에는 176명의 선원과 민간과학자 5명을
포함해 총 181명이 탑승했는데 사라졌다 되돌아 왔을 때 생존자는 21명에
그쳤다.
40명은 방사능에 노출돼 죽거나 감전사로 타죽고 나머지 120명은 실종됐고,
생존자들도 대부분 정신이상자가 되어 제대를 했다.
전쟁의 와중에서 개발을 서두르다가 안전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승무원들이
타고 있는 실제의 선박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되어 피해는 더욱 컸다.
물론 이 실험에 대해 선원들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임했다고 한다.
이 가공할 만한 이 실험은 즉시 은폐됐고 나중에 영화로(Philadelphia
Experiment) 만들어져 그 내막의 일부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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